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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광고 - 며느리밥풀꽃 때문에라도.

만호 씨는 논 옆을 지난다.

누런 논이 반, 수확이 끝나 썰렁한 논이 반이다.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든다고 하지만 그래도 벼농사는 이 나라, 이 땅 농사의 근간이다. 문득 밥알 두 개가 떠오른다.

 

만호 씨는 며느리밥풀꽃이라 기억한다.

 

가난한 집 처자가 더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갔다.

시집간 얼마 후 마침 시아버지의 생신이 찾아와 처음으로 쌀밥을 짓게 됐다.

정성을 다해 쌀을 씻어 솥에 넣은 다음 아궁이에 불을 붙였다.

솥이 울기 시작하자 장작을 빼 뜸을 들였다.

제대로 밥이 됐나 확인하기 위해 밥알 두 개를 떼 입에 넣었다.

하필 그 모습을 시어머니가 보게 됐다.

시어머니는 노발대발했다.

시아버지 먹을 밥을 몰래 훔쳐 먹는다고 욕을 해댔다.

말뿐 아니라 손까지 날아왔다.

아니라고, 밥이 잘 됐는지 보려고 딱 밥알 두 개 맛을 봤다고 며느리는 하소연했다.

아직 삼키지도 못한 밥알 두 개를 혀 위에 올려 보여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칼날 같은 폭력은 그치지 않았다.

결국 며느리는 맞아 죽었다.

죽은 며느리가 묻힌 자리에 꽃이 피었다.

혀 위 밥알 두 개가 놓인 모양의 꽃이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불렀다.

 

만호 씨는 생각한다.

질긴 것이 사람의 목숨이라지만 억울함에 폭력이 얹어지면 또 부질없이 쓰러지는 것이 사람의 목숨인가 보다.

전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허기가 극복해야 할 절대과제인 가난한 시절 그렇게 죽어간 며느리가 한둘은 아니었으리라.

 

독거중년 만호 씨는 남도 바닷가 마을 외딴 집에서 전기밥솥에 달라붙은 마지막 밥풀까지 모두 떼어내 그릇에 담는다. 이것이 한때 목숨과 바꾼 밥알이라 여기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