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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 움직이면 닳는다. 만호 씨는 다짐한다. 여기까지 자판을 두드리면서 한 번 더 다짐한다. 내일은 깎자. 꾸준히 내리는 비에 이틀 동안 실내에 갇힌 만호 씨다. 그런 만호 씨에게 갑자기 손톱이 눈에 들어온다. 이틀 사이 훌쩍 자란 듯싶다. 노동을 하지 않아서? 이유는 모르겠으나 자판을 두드리는 감각이 둔해질 정도로 자라 있다. 오후에는 깎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비 내리는 오후에 손톱깎이로 또각또각 소리를 만들어내는 모양새가 내키지 않는다. 처량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자판 두드리는 감각마저 둔하게 만들 지경으로 자랐으니 내일은 깎긴 깎을 일이다. 두 마리 개를 키우면서 한 번도 발톱을 깎아준 적 없다. 실외에 살고 하루 두 시간여 산책을 하며 녀석들은 알아서 제 발톱들을 관리한다. 하루 종일 묶여 지내는 다른 ..
하루 - 강탈당하다. 만호 씨는 강탈당한다. 꼬박 하루를. 예보에 따르면 내일도 강탈당할 확률이 높다. 비가 내린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지독하게 꾸준하게 내린다. 잠깐이라도 멈추면 개들을 끌고 큰 볼 일에 나서야지, 하면서 창밖을 수시로 내다보는데 볼 때마다 비가 듣는다. 시커먼 개는 그렇다 치더라도 임신한 꼬맹이 강아지에게 비를 맞추는 것이 내키지 않은 만호 씨다. 하지만 집 주변에서의 응가를 싫어하는 녀석을 위해 결국 오후에는 끌고 나선다. 어째 끌고 나오니 빗줄기가 굵어지는 것 같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두 녀석 모두 크고 작은 볼 일을 해결한다. 다시 돌아와 밥을 챙겨주고 외딴 집 주변을 둘러본다. 태풍 여파로 인한 비라는데 그다지 바람은 험하지 않다. 하지만 만호 씨의 손길을 부르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책임감 - 신음소리라면. 만호 씨는 달려간다. 책임감이다. 이런 소리가 들린다면 달려가야 한다. 설령 그 때가 신새벽의 한가운데라고 할지라도. 눈을 뜬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시각은 04:12이다. 잠을 깨운 것은 소리, 그것도 신음소리다. 벽을 타고 흐르는 소리는 꼬맹이 강아지가 흘리는 신음소리다. 설마 벌써 새끼를? 짖는 것이라면 굳이 침대에서 몸을 세울 일은 아니지만 온몸으로 토해내는 신음소리라면 달려가야 한다.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을 작동시키고 현관문을 열고 꼬맹이에게 다가간다. 꼬맹이는 목줄이 허용하는 가장 먼 곳에서 뒷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있다. 새끼를 낳는 자세라 보기에는 어색하다. 그건 익숙한, 마지막엔 구수한 냄새가 흐르는 바로 그 자세다. 맞다. 불빛으로 확인할 것도 없다. 이미 냄새가 먼저 반긴다. 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