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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 애정은 애정이고 상처는 상처다. 만호 씨는 쓰리다. 아무래도 아침 산책 때 조금 더 두툼한 하의를 입어야 할 모양이다. 싸늘함도 싸늘함이지만 또 다른 상처를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전날 내린 비에 젖은 농로가 어둠 속에서 반짝거린다. 물웅덩이도 피해야 하고 두 마리 개의 목줄도 꼬이지 않도록 해야 하는 탓에 걸음이 불편하다. 그 와중에 두 마리 개 모두 큰 볼 일을 끝낸다. 익숙한 절차대로 호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 건넨다. 배가 거의 남산만 해졌음에도 꼬맹이 강아지는 잘 걷는다. 그것이 대견해 간식을 먹은 뒤 앞서 가는 시커먼 개 몰래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것을 어떤 신호로 받아들인 꼬맹이는 앞발을 세워 만호 씨의 오른쪽 허벅지로 달려든다. 농로와의 마찰로 벼려진 꼬맹이의 발톱은 날카롭다. 거기에 임신으로 불어난 몸무게까..
공주 - 삽질의 피곤을 잊게 만드는 자태다. 만호 씨는 공주와 만난다. 곱다. 흙투성이 얼굴이지만 곱디 곱다. 가히 공주라 부를 만하다. 고구마를 수확한다. 줄기를 걷어내고 깊게 삽질한다. 내심 해마다 반복되는 곤자리의 습격을 걱정한다. 다행이다. 올해는 곤자리들이 휴가를 떠났나보다. 장갑 낀 손으로 흙을 털어낸다. 열에 아홉은 고운 피부다. 수확량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수시로 잡초를 뽑아준 노력은 보상 받는다. 대추나무와 붙은 두둑에서는 얽은 자국의 고구마가 한둘 보인다. 옛말 그른 것 없다. 사람은 큰 사람 덕을 보지만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못 본다. 아무래도 곤자리들은 큰 나무 근처에 많이 사나보다. 두 시간 동안 세 개의 두둑을 뒤엎는다. 곧 비가 내릴 얼굴의 하늘인지라 삽질에 조급함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삽에 베인 고구마는 없다. 만호 씨..
소리 - 뱀에게 귀가 있나, 없나. 만호 씨는 검색하지 않는다. 몇 글자만 적어 넣으면 궁금증은 해소될 일이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경험으로 얻은 정보를 그저 믿기로 한다. 요즘 시골길에서 죽임을 당하는 대표적 동물은 뱀이다. 일교차가 심하다보니 볕을 받아 따뜻해진 도로에서 체온 보충을 하다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다가오는 차량의 바퀴에 깔려 죽는다. 변온동물의 한계다. 아침 안개가 걷힌 후 외식 겸 일주일 분 식량을 장만하기 위해 읍내로 향한 만호 씨다. 짬뽕 한 그릇을 비우고 몇 만원 어치의 물품으로 장바구니를 채운 다음 외딴 집으로 향한다. 바람은 약간 불지만 오후로 넘어가는 따스한 시골길을 달린다. 그때 저 앞 도로에 똬리를 튼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천천히 속도를 늦춘다. 아니나 다를까 뱀이다. 흔한 유혈목이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