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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 신음소리라면. 만호 씨는 달려간다. 책임감이다. 이런 소리가 들린다면 달려가야 한다. 설령 그 때가 신새벽의 한가운데라고 할지라도. 눈을 뜬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시각은 04:12이다. 잠을 깨운 것은 소리, 그것도 신음소리다. 벽을 타고 흐르는 소리는 꼬맹이 강아지가 흘리는 신음소리다. 설마 벌써 새끼를? 짖는 것이라면 굳이 침대에서 몸을 세울 일은 아니지만 온몸으로 토해내는 신음소리라면 달려가야 한다.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을 작동시키고 현관문을 열고 꼬맹이에게 다가간다. 꼬맹이는 목줄이 허용하는 가장 먼 곳에서 뒷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있다. 새끼를 낳는 자세라 보기에는 어색하다. 그건 익숙한, 마지막엔 구수한 냄새가 흐르는 바로 그 자세다. 맞다. 불빛으로 확인할 것도 없다. 이미 냄새가 먼저 반긴다. 이내..
학습 효과 - 뱀과 싸울 수 있는 개와 산다. 만호 씨는 경험 숭배자다. 시커먼 개와 수 년, 함께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런 짖음은 낯선 방문객이 왔다는 것이고, 또 이런 짖음은 길고양이가 외딴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이고, 또 이런 짖음은 다른 개들의 짖음에 화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볕이 따스한 오전, 짐작이 쉽지 않은 시커먼 개의 짖음이 계속된다. 꼬맹이 강아지가 동조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오로지 시커먼 개에게만 어떤 상황이 발생한 듯싶다. 소파에 걸친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현관 밖으로 나선 만호 씨다. 대문 밖에서 대문 안쪽 잔디밭을 보며 짖는 시커먼 개의 형체가 창살 사이로 보인다. 왜? 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만호 씨는 대문을 연다. 그리고 시커먼 개의 시선이 향한 곳을 함께 본다. 대문 밖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다시 ..
찌니주의보 - 작가들이여, 시골을 노려라. 만호 씨는 상상해본다. 졸음 없는 독서다. 정지아 씨의 ‘찌니주의보’를 읽는다. 길지 않은 탓에 반나절 만에 완독한다. 눈으로 훑은 활자가 그대로 뇌 속에 녹아든다. 요즘 소설 독서의 취향 중 하나다. 배경이 시골이면 집중도가 확 높아진다. 만호 씨가 놓여 있는 공간이 시골이기에 쉬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찌니주의보의 스토리 골격은 단순하다. 동성애자의 시골 안착 기록. 당연하게 이어지는 마찰과 그 마찰로 인한 열기에 약간의 상처는 입지만 어떤 식으로든 적응하는 사람들. 완독 후 상상해본다. 왠지 도시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동성애 다음에 또 뭘 시골이라는 시공간에 던져놓을 수 있을까. 도시에서는 흔한 무엇이든 시골에 던져놓으면 어렵지 않게 스토리 라인이 구성될 수 있을 듯싶다. 의외로 21세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