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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 허기에 대비하고 있는가.

만호 씨는 구두쇠다.

또 건망증도 있다. 어제 외출 때 두 마리 개의 사료를 장만해야 했다. 하지만 망각했다. 사료를 살 수 있는 농협 자재 창고를 건너뛰었다. 핑계는 있다. 주문한 퇴비를 실은 차가 바로 출발한다고 했다. 퇴비를 부릴 장소의 정리가 필요해 서둘러 외딴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도중 개밥 생각은 전혀 찾아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 산책을 마치고 개들의 사료를 줄 때 저녁밥이 조금 부족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오로지 개 사료를 위해 읍내까지 왕복 20킬로미터의 거리를 차를 몰고 외출하는 것은 낭비라 단정한다. 어차피 내일 낚시를 갈 것이다. 낚시 후 사료를 구입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는다.

 

만호 씨는 미안하다.

오전의 예감은 현실이 된다. 오후 산책 후 사료 포대를 탈탈 털어 녀석들의 밥을 챙긴다. 평소 분량의 절반 정도다. 허기질 것이다. 오늘밤의 허기도 허기지만 내일 아침의 허기는 더 진할 일이다. 새벽 낚시를 하더라도 읍내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은 빨라도 오전 11시다. 그때까지 아침도 먹지 못하고 두 마리는 개는 물로만 배를 채워야 한다. 만호 씨는 나쁜 주인이다.

 

만호 씨는 목격한다.

저녁을 먹은 만호 씨는 담배를 물고 대문 밖으로 나선다. 배고픈 녀석들을 말로라도 달랠 작정이다. 요즘 어둠은 재빠르다. 오후 630분이 되지 않았음에도 어둑어둑하다. 시커먼 개는 평소처럼 반기지 않는다. 맘이 상한 것인가? 아니다. 녀석은 뭔가를 앞발 사이에 두고 주둥이를 놀리고 있다. 뼈다귀다. 언젠가 만호 씨가 안겨준 족발 뼈다귀임에 분명하다. 녀석은 이런 날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묶인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의 대부분은 시멘트 포장이다. 나머지 약간도 큰 바위 사이의 파기 쉽지 않은 흙무더기다. 그 좁은 틈에 감춰둔 뼈다귀를 꺼내 채우지 못한 허기를 달래고 있는 것이다. 녀석의 준비성은 철저하다.

 

만호 씨는 걸음을 옮긴다.

떠돌이 백구를 본다. 녀석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개집 밖에서 벌러덩 누워 있다. 허기로 인한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인정한다. 덩치가 시커먼 개의 두 배인 백구를 위해 조금 더 저녁 사료를 챙겨준 만호 씨다. 차별이다. 만호 씨는 궁금하다. 과연 백구도 허기가 창궐할 때를 대비하고 있을까. 어딘가 숨겨둔 비상식량이 있을까. 궁금하다고 계속 굶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학대다.

 

독거중년 만호 씨는 남도 바닷가 마을 외딴 집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함께 하는 생명에게 허기를 강요하는 일은 범죄다. 오늘 만호 씨는 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다짐한다. 내일 서둘러 원하는 만큼 악동 배스를 낚아낸 다음 사료를 장만해 돌아오리라. 죄책감도 낚시 쾌감을 이겨내진 못하는구나. 역시 만호 씨는 나쁜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