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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 - 계절 변화에 민감한 신체 기관.

만호 씨는 달린다.

표시를 따라 달리고 달려 도착한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다. 절로 입에서 욕이 나온다. 만호 씨의 욕망은 자물쇠로 차단당한다. 욕설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차단당했지만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더욱 불타오른다. 만호 씨는 다시 달린다. 달리며 사드 백작을 떠올린다. 정당한 욕망은 타협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결론은 노상방뇨뿐인가.

 

만호 씨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세운다.

꿈속 질주의 원인은 현실과 이어진다. 채워진 방광이 잠과 꿈을 모두 몰아낸다. 어둠을 더듬어 화장실로 향한다.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오히려 눈은 기능을 잃는다. 본능적 조준으로 방광을 비운다. , 시원하다. 이건 타협이 아니다. 욕망은 해소된다. 새벽은 욕망이 불타오르는 동시에 해소되는 시간이다.

 

만호 씨는 계절을 읽는다.

좋은 계절이다. 입어도 덥지 않고 벗어도 춥지 않은, 노동해도 땀이 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소름이 돋지 않는 그런 시간이 도래한다. 오후 텃밭 노동이 격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가을로 접어든 계절이 땀을 앗아간다. 반면 입에 넣은 것은 지난여름과 큰 차이가 없다. 먹을 만큼 먹었고 마실 만큼 마셨다. 체내로 들어간 수분의 상당 부분이 땀으로 배출된 긴 여름 내내 방광은 여유 공간이 충분한 밤을 보냈다. 하지만 땀을 흘리지 않은 날 새벽, 방광은 갑작스런 만수위에 놀라 꿈을 동원해 잠을 몰아낸다. 아이러니다. 꿈으로 잠을 깨우다니. 아무튼 만호 씨는 오줌싸개가 아닌 탓에 방광의 신호에 적절히 대처, 화장실을 찾는다. 대신 기상 알람이 울릴 때까지 잠든 것도, 그렇다고 말짱하게 깬 것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을 보낸다.

 

독거중년 만호 씨는 남도 바닷가 마을 외딴 집에서 다짐한다. 오늘은 잠들기 전 억지로라도 화장실을 찾아야지. 숙면은 지금 만호 씨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보약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