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호 씨는 웃지 않는다.
웃을 일이 많지 않은 탓이다. 남도 바닷가 마을 외딴 집에 정착한 후 감정의 가짓수는 많지 않다. 웃는 감정은 특히 부족하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이 퇴화하듯 웃지 않는 얼굴에서 미소 근육이 사라진다. 가벼운 미소는 억지로라도 가능하지만 파안대소는 어렵다.
만호 씨는 광대뼈를 올리려 한다.
있는 힘껏 얼굴의 피부들을 꿈틀거리게 만들어 겨우 웃어보지만 좀처럼 광대뼈를 둘러싼 근육들이 올라가지 않는다. 웃기 위한 근육 사용인데 결과로 드러난 얼굴의 표정은 찡그림이다. 더 자주 웃었더라면, 더 자주 즐거운 감정과 대면했더라면 만호 씨의 미소 근육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일이다.
만호 씨는 그것이 거짓임을 깨닫는다.
즐거워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 즐거운 것이라 나불거린 놈들이 누구인가. 모두 거짓부렁이다. 가짜 미소는 근육을 단련시키지 못한다. 자연스러운 미소는 감정이 바탕이 된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진실한 감정의 웃음만이 얼굴 근육을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만호 씨의 얼굴 근육들은 만호 씨의 의지를 배반한다.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다. 근육들이 따라주지 않는다. 억지로 웃어 거울을 쳐다보면 역시나 찡그린 얼굴이 만호 씨를 책망한다.
독거중년 만호 씨는 즐거움 양산을 다짐한다. 그런 감정들이 다시 얼굴 미소 근육들을 되돌릴 것이라 장담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만호 씨는 미소 근육 부재 시대를 살고 있다.